정치역사

존 로크와 혁명을 알아보자

행복한인생사는중 2023. 8. 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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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혁명 

17세기의 기준으로 보면 존 로크는 오래 살았을 뿐 아니라 , 그의 삶은 어느 시대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다사다난했습니다. 그는 1652년에 청교도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현 지위가 높지 않았으나 경제적으로 유복했고, 내전 시기에 의회파로 군대에 복무했습니다.

 

그는 전시에 기병대 지휘관을 지냈던 지역의 의원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아들을 웨스트민스터 학교에, 이후에는 옥스퍼드의 크리아스트처치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두 세기의 상단 기간 동안 존 로크는 영국 자유주의자들이 자랑하는 미덕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신중하고, 양식 있고, 상식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과도한 열정으로 격변과 내정에 휘말리는 위험을 모면하려 했고, 권력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수용해 독재와 전제가 무제한적으로 퍼지는 것도 피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혁명의 지지자, 홉스의 숨은 제자, 찰스 2세에 맞선 음모자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찰스를 암살하는 것이 나라를 폭군으로부터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며, 찰스 2세 치세 말기와 제임스 2세의 깖은 치세 동안 네덜란드로 도피하기로 한 그의 결정은 완전히 정당화되었습니다.

 

평화로운 자연 상태 

자연법은 정치권력이 부재해도 인간이 좋은 환경에서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행동이 규칙들을 마련해 줍니다. 여기서 로크는 홉스와 충돌을 빚었습니다. 홉스가 보기에 자연상태의 고통은 우리가 어떤 규칙들을 따르는 게 좋은지 알고 있지만, 순탄하게 따를 수 없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로크는 우리가 그 규칙들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우리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생활이 너무 복잡해져 전통적인 성문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 규칙들로 우리 행동을 구제할 수 없게 되거나, 나쁜 행실이 만연한 탓에 우리가 더 이상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는 그 규칙들이 통용된다고 본 것입니다. 로크는 자연법의 요건을, 우리의 생존이 걸린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에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했습니다.

합법적 정부의 형성

로크는 정부가 부재할 때 인간은 자연 상태에 있다고 가정합니다. 홉스의 경우처럼 로크의 자연 상태도 반드시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게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연상태는 상대적으로 정의됩니다. 즉 인간의 공동의 정부가 없을 때 서로에 대해 자연 상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권국가는 항상 서로에 대해 자연상태에 있으며. 개인들도 공동의 정부가 없을 경우 서로 만나면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에 있게 됩니다. 

 

인간은 전반적으로 승인되고 도덕적으로 구속적인 규칙 아래에서, 그 규칙을 집행하는 정부가 없어도 서로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크도 그것을 위한 필요조건은"태로는 잘 통하지만 때로는 안 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유권

신은 인간에게 세계를 공유하도록 내주면서 생존과 인간생활 향상을 위해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좋은 것들이 본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면, 개인들은 공동의 재산으로부터 각자자신의 몫을 챙기는 정당한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크가 소유권의 합법성의 관한 스콜라식 연역 추론을 보완한 결과입니다. 

 

로크는 생산성에 관한 논의를 이용해 토지 재산의 합법성을 옹호합니다.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거나 비료를 주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한 사람은 열매만이 아니라 그 나무도 획득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밭을 일군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 수확물만이 아니라 그 밭도 획득하게 했습니다. 이 주장은 우리의 노동과 소유뮬을 혼합하는 단순한 사례의 유추를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국가의 구성

정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해 로크는 비평가들이 3세기 동안 익혀온 설명을 선보입니다. 홉스와 재조적으로 로크는 정부의 수립을 두 단계 과정으로 봤습니다. 첫째는 국민이 스스로 국민을 형성하는 단계인데, 정치사회를 형성하는 서막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만인의 만인에 해단 계약이었습니다. 중세 법률가들은 그것을 공동의 약속이라고 불렀습니다.

 

둘째는 전통적으로 종속의 약속이라고 불렀습니다. 국민이 구체적인 형태의 정부 아래 결집하는 단계입니다. 로크의 사상을 근대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가 상상 속의 메커니즘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로마의 법률가들로부터 전승된 낡은 상상은 국민이 정치권력을 만들어내 정치사회를 이루고 그 권력을 지배자에게 부여한다고 봤습니다.  이것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재현이며, 공화주의로 위장한 바르톨루스입니다. 로크의 설명은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을 시사합니다.

 

또한 그는 정치사회가 형성된 이수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체제를 만들게 되는 과정에 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다수의 의사 결정을 당연시하고, 더 큰 힘이 이끄는 대로 신체가 이동하는 게 필연적이라고 무미건조하게 주장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다수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어렵고 그 정당성과 문제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로크는 무엇보다 정부의 입법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의회주권의 수용을 나타내지만, 그는 그 밖의 다양한 대의제와 입법기구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전통이 된 구분과 달리 정부의 기능을 입법, 행정, 연방으로 구분 했으며, 권력의 분리, 견제와 균형 같은 이론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천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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