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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와 시대
그는 1712년 6월 28일 제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소의 아버지는 시계공으로 작은 사업체를 꾸렸습니다. 그는 교육을 받았고 야심이 있었으나 사업을 등한시했고 사회적 사다리에서 내리막길을 탔습니다. 그는 잘못 배치된 사회계층에 속했습니다. 제네바는 공화국이었습니다. 공화국 정부들은 대게 그렇듯이 재배권은 원칙적으로 그랑 콩세이(대회의)의 수중에 있었으며 회의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자립적인 남자 시민이었습니다. 루소와 제네바의 관계는 늘 위험스러웠습니다. 10대 시절 그는 어느 조각사의 도제로 들어갔지만 이내 그 작업에 싫증을 느끼고 장인의 권위를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도시를 떠남으로써 장인에게서도 탈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41년 파리에 도착한 그는 디드로와 교유했고, 이후 그를 위해 백과전서에 수록될 두 편의 기사를 썼습니다. 하나는 음악에 관한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학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1762년 사회계약론을 출판할 때부터 16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루소의 삶은 늘 편치 않았습니다. 당국에 시달림을 받지 않을 만한 머물 곳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네바의 프티 공세이에 투옥당할 뻔한 위기도 겪었습니다.
루소와 혁명
<평판과 진실>
장자크 루소는 정치에서 지성인이 맡은 역할에 관한 토머스 칼라일의 훌륭한 설명에서 루소는 스타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루소는 혁명을 반대했고, 온갖 형태의 급작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도 거부했습니다. 그는 근대 세계의 사회. 경제. 지리적 이동성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의 정치사상은 고전적이거나 고전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공화주의적인 '로마사 논고'의 마키아벨리를 찬양했으며, 계몽주의의 합리성 이념에 공감했습니다. 비인격적이고 공평한 법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를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인간 본성의 괴상하고 개인적이고, 반사외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 이념을 스스로 침해했습니다. 도덕법이나 자연법을 이성이 이해하는지, 아니면 마음이 각인하는지는 그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여려 거자 난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루소가 이룬 최대의 혁신은 인간의 조건을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조건으로 분석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에게서 원죄의 짐을 제거하고, 그것을 사회의 부담으로 전가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인간존재가 사회의 손에 쥐어진 진흙 덩어리라고 보았으며, 사회가 우리의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시켜 자멸로 이끈다고 비난했습니다.
루소가 발견한 인간의 진화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깊이에서 나오는 표면의 빛의 움직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인간의 체질과 성질에는 뭔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이 있어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문화를 가능케 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인간 발전 이론의 큰 주제들입니다. 또한 자연이 세계에 가져다준 유아들을 과연 얼마나 그들 자신과 남들에게 두루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른,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고 행복한 어른으로 키워 낼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루소 교육론의 주제입니다.
그는 변화가 인간의 조건을 개설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인류가 언어, 이성, 도덕, 심지어 정치를 발견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간 습득한 기술과 능력으로 이득을 거두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그것을 불이익으로 치부했습니다. 변화는 약속이라기보다 위협이었으며, 그의 정치학은 안정성과 단순함 같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원래 1754년 디종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고 1755년에 찰판한 책입니다. 이 책은 루소의 특징인 현란한 글쓰기로 점철되어 있지만, 고대인과 근대인의 대조를 다룬 전통적인 글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루소는 홉스의 자연주의를 계승했고, 국가는 국가가 수립된 뒤에도 잠복해 있는 내전 상태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는 홉스의 견해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문제의 뿌리에 인간 본성이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루소는 인간존재에게서 원죄를 면제해 주었고 그 대신 사회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엄밀히 말해 인간 본성은 홉스가 서술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홉스는 사회화된 인간 본성을 설명했습니다.
'인간 불편등 기원론'에서 루소가 개괄한 인류 역사는 인간 발전에 관한 '단계' 이론의 변형입니다. 18세기는 인간사회가 수렵. 채집 단계에서 유목. 목축 단계를 거치고 정주. 농경 단계로 들어와 최종적으로 당대의 상업사회를 이루었다고 보는 사고가 익숙했습니다. 이 이론은 여러 가지 변형을 낳았는데, 고대로 거슬러가기도 했고 거기서 도덕을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8세기의 이론과 후대에 변형된 일반론의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근대 사회이론은 산업사회와 전 산업사회가 엄청난 생산성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마르크스 이전에 이론가들의 관심은 다른 변형 단계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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